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자살할래"

미성년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

 

“자살할래”라는 말이 미성년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돌고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선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말을 운운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이 문화의 심각성을 아직 학생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어른들이 보기엔 다소 심각해 보이는 이 일이 학교나 학원에서는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 10대 청소년들은 왜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말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는 걸까?

 

세대를 거쳐 갈수록 휴대전화 사용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어린 나이부터 쉽게 SNS에 노출되며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유행과 문화에 점점 스며들고 있다.

 

친구들끼리 장난으로 주고받는 비속어가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면서 점점 자연스레 극단적인 말 사용이 늘며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정말 자살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그저 유행어 중 하나로 쓰인다.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말 사용이 심한 사람을 청소년들 사이에선 쉽게 “패션 우울증”이라 불리는 경우가 있다.

 

어떤 말 앞에 ‘패션’을 붙이는 건 보통 그 정체성이나 상태가 진지하거나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겉모습, 유행, 이미지 소비에 가깝다는 뜻을 담기 위해서다.

 

패션 우울증이란 실제 우울증이 아닌, 관심을 끌기 위해 우울증인 척하는 행동이라고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 불리고 있다.

 

10대~20대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돌고 있으며, 주로 SNS를 통해 과장된 우울과 힘듦을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심한 경우 자해, 자살 시도 등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우울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해계”, “우울계”, “우울 전시” 등이 패션 우울증을 연기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이 단어들 모두 SNS에서 사용되는 신조어이며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공유하기 위해 생긴 단어이다.

 

“왜 자신의 우울을 과장해서 들어내려는 거지?”

“자해한 걸 자랑하듯이 SNS에 올린 이유가 뭐지?”

와 같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모든 청소년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이 학업 스트레스와 공부 압박으로 인해 생긴 정신적 불안을 잘못된 방법으로 해소 시키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자신이 현재 불쌍한 상태임을 남에게 알려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스트레스를 해소 시키는 것이다.

 

일부 경우에서는 자신이 우울증이란 정신적 질환으로 인해 남들보다 특별해 보이고 싶은 이유가 두 번째이다.

 

아직 어린 청소년들은 친구들 사이에서의 서로를 향한 관심, 무리 속에서의 서열이 누구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최대한 자신이 특별해 보이고, 그로 인해 관심과 공감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된 경우이다.

 

아직 어린 청소년들은 친구들이 하는 행위를 따라 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무리 속 누군가가 우울한 척을 한다던가, 자해를 하는 것을 보면 그 친구와 공감하기 위해 자연스레 그 행위를 따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들이 점점 늘어나며 “패션 우울증”이란 말이 생김과 동시에 우울증과 비슷한 행동과 말을 자처하는 것이다.

 

패션 우울증은 “진짜 우울증”에 대한 인식을 안 좋게 만든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우울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 이겨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단순화하는 행위이다. 또한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용기 내어 도움을 요청하기 힘들어진다. “패션 우울증”이란 말의 편견과 인식, 오해로 인해 도움을 요청하기 꺼려져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숨게 만든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자살예방교육’과 같은 교육도 물론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하는 교육을 너무 어른을 중심으로 교육한다.

 

‘자살예방교육’에서 보여주는 예시들과 대처 방법 모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자살을 생각하는 학생의 말과 행동이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교육에 공감하지 못하고 어른들의 잔소리로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이 사회는 이러한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과한 사랑과 관심을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지게 되어 부모님, 선생님들과의 대화를 기피하게 된다. 청소년들이 어른, 사회에게 원하는 것은 “이해”라고 생각한다. 감정을 먼저 이해하거나 지금 내가 왜 힘든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예시이다. “판단”보단 “해석”으로 청소년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청소년들이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감정을 숨기지 않도록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적과 성격으로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청소년들의 힘듦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소한 노력이 어린 청소년들에겐 오히려 크게 와닿을 수 있다.

 

 

어린 청소년들의 입에서 “자살”이라는 단어가 자주 내뱉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이 개선되어 행복한 청소년들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