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운영의 주요 문제점 분석 및 해결 방안 모색
고교학점제, 빛과 그림자: 수도권 교육 현장의 과제와 전망
2025년 전면 시행을 앞둔 고교학점제가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학생 개개인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 선택을 통해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키우고,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장밋빛 청사진 이면에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열이 높은 수도권에서는 고교학점제 도입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며, 교육 현장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본 컬럼에서는 고교학점제의 주요 쟁점과 현장의 목소리, 그리고 성공적인 안착을 위한 제언을 심층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고교학점제, 이상과 현실의 간극: 현장의 목소리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스스로 학습 경로를 설계하고, 192학점 이상을 취득하면 졸업을 인정받는 시스템이다. 심화 과목, 전문 교과, 융합 과목 등 다양하고 깊이 있는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학교 밖 학습 경험까지 학점으로 인정하는 유연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 등 21세기 핵심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며, 학생들의 학습 동기 부여와 진로 탐색 심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상적인 목표와 달리, 학교 현장에서는 여러 문제점이 노출되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교원 및 학교 운영의 부담 가중
가장 큰 어려움은 교원들의 업무 부담 증가와 교원 수급 불균형이다. 다양한 선택 과목 개발 및 운영, 학생 개별 진로 및 학업 설계 지도, 복잡해진 출결 관리,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 등 새로운 역할과 책임이 부여되면서 교사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 교사의 75.8%가 수업 및 행정 업무 부담 증가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으며 , 교사 10명 중 8명이 제도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결과도 있다.
소인수 과목이나 심화 과목 담당 교사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전남 무안고의 경우, 다수 학생이 희망하는 과목임에도 교사가 부족하여 외부 강사를 초빙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정부의 교원 정원 감축 기조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으며 , 기존 교사들이 여러 과목을 가르치는 다과목 지도 부담(교사의 20%가 3개 과목 이상 담당 )이 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고교학점제의 이상적인 정착을 위해 약 8만 8천여 명의 교사가 더 필요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선택과목 다양화는 학교 운영의 복잡성도 증대시킨다. 학생 개별 시간표 운영, 이동 수업 관리, 공강 시간 학생 관리 등은 정교한 시스템과 운영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또한, 다양한 선택 과목 운영을 위한 교실, 실험실, 특별활동실 등 물리적 공간 부족 문제도 많은 학교가 직면한 현실이다. 신도시 지역 학교는 과밀학급과 교실 부족에, 농산어촌 학교는 유휴 공간 활용의 어려움이라는 이중고를 겪기도 한다.
학생들의 학습 및 진로 설계의 어려움
내신 평가 방식 변경(5등급제)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경쟁 완화 취지와 달리, 등급 구간 확대로 인한 변별력 감소 우려가 제기되며 , 특정 등급 확보를 위한 경쟁이 오히려 치열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은 실수 하나가 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인기 과목' 쏠림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 실제로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90점대 고득점 학생들이 동일하게 3등급을 받아 대입에 불리할 수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과목 선택의 혼란 또한 크다. 진로가 불확실한 고1 학생들에게 과목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하며 , 이는 사교육 컨설팅 의존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한 교사는 진로 상담 스트레스가 심해 중학교로 전근을 고민 중이라고 토로할 정도다.
고교학점제는 교육 격차 심화 우려도 낳고 있다. 수도권에 비해 비수도권 지역 학교나 일반고는 교육 자원이 부족하여 다양한 선택 과목 개설에 한계가 있다. 전국단위 자사고는 평균 105.3개의 과목을 개설한 반면, 지방 소규모 일반고는 평균 75.6개에 그쳐 학교별 과목 수가 최대 2배까지 차이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과목 선택권의 차이는 대입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의 실효성 문제도 제기된다. 학습 의욕이 낮은 학생들의 보충 프로그램 참여 유도가 어렵고 , 프로그램의 실제 학업 능력 향상 효과에 대한 의문도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형식적 운영'에 그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고교 성적 부진 시 수능 위주 정시에 집중하기 위해 자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일반고의 고1 학업중단율은 2020년 1.5%에서 2022년 2.3%로 증가했으며 , 2023년 전국 고교 학업중단율은 2.0%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내신 불이익을 회피하고 정시에 집중하려는 '전략적 자퇴'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대입 제도와의 연계성 부족 및 정책적 과제
고교학점제 운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대입 제도와의 '엇박자'다.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른 다양한 학습을 추구하는 고교학점제와 달리, 대입은 여전히 수능과 내신 상대평가 등급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는 학생들이 수능 준비에 유리하거나 좋은 내신 등급을 받기 쉬운 과목을 선택하도록 유도하여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훼손한다.
문재인 정부 시기 정시 40% 확대 정책은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은 이러한 문제점을 일부 해소하려는 시도로 평가받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수능에서 선택과목이 폐지되고 공통과목(통합사회, 통합과학 등) 중심으로 개편되지만 , 이는 고2·3학년 선택과목 학습의 중요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내신은 5등급제로 전환되지만 여전히 상대평가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실질적인 경쟁 완화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다만, 사회·과학 융합선택 9개 과목은 절대평가로 전환되어 학생 선택권 확대 및 융합 학습 장려 효과가 기대된다.
정책 추진의 일관성 부족과 현장 소통 미흡도 문제다. 명확한 로드맵과 지원 방안 없이 정책이 제시되어 혼란을 겪거나, 교육 당국으로부터 '방임'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해외 사례에서 찾는 교훈
고교학점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해외 국가들의 사례는 국내 제도 개선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 독일 (김나지움 상급과정): 특정 과목군 집중 심화 학습과 함께 필수 과목 비중이 높아 공통 기초 학력 확보를 중시한다. 교사들은 통상 2개 이상의 과목 지도 자격을 갖추며, 엄격한 학사 관리가 이루어진다.
- 캐나다 (온타리오 주): 필수 과목(18학점)과 선택 과목(12학점) 이수 외에 지역사회 봉사활동, 문해력 시험 통과 등 다양한 졸업 요건을 설정하고 있다. 지역 교육위원회가 지역사회 필요에 따라 과목을 개발·운영하는 자율성도 특징이다.
- 핀란드: 학생 개인별 학습 계획에 따라 운영되는 무학년 학점제를 특징으로 하지만, 전체 교육과정의 약 3분의 2가 필수 과목으로 구성되어 선택과 공통 교육 간 균형을 유지한다. 교사의 높은 전문성과 자율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기반이 된다.
해외 사례들은 한국이 추구하는 '전면적 교과 선택'이 반드시 핵심 요소는 아니며, 다수의 성공 국가는 필수 이수 과목 비중을 높게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체계적인 진로 지도 시스템, 교사의 전문성(다과목 지도 능력 등), 엄격하고 명확한 평가 및 졸업 기준, 대입 요건과의 연계성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고교학점제 성공적 안착을 위한 제언
고교학점제가 본래의 취지를 살리고 미래 교육의 동력으로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교원 역량 강화 및 지원 체계 구축
- 안정적 교원 확보 및 다과목 지도 역량 강화: 고교학점제가 요구하는 적정 교원 수를 확보하고 , 다과목 지도 교사를 위한 체계적인 연수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 교원 연수 내실화 및 전문적 학습공동체 활성화: 교육과정 설계, 학생 참여 중심 수업, 과정 중심 평가, 진로·학업 설계 지도 등 핵심 역량 강화 연수를 제공하고 , 전문적 학습공동체(PLC)를 활성화해야 한다.
- 교원 업무 경감을 위한 행정적·재정적 지원 확대: 불필요한 행정 업무를 축소하고, 행정 지원 인력 확충 및 업무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추가 업무 담당 교사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 체계 마련도 필요하다.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 지원 강화
- 체계적인 진로·학업 설계 지도 시스템 구축: 중학교 단계부터 진로 탐색 교육을 강화하고 , 학교 내 진로전담교사 역할 강화 및 전문적인 상담·지도를 제공해야 한다. 경기 고색고의 '교육과정 리더' 학생 멘토링 프로그램은 좋은 사례다.
- 학생 과목 선택권 확대 및 학습 경험 다양화: 전문 교과, 심화 과목, 융합 과목 등 폭넓은 선택 과목을 개설하고 , 공동교육과정 및 온라인학교를 활성화하여 학습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 운영 내실화: 명확한 최소 성취수준 기준 설정, 맞춤형 지도 방안 마련, 관련 교사 연수 강화, 다양한 지원 모델 개발 등이 필요하다.
제도 개선 및 인프라 확충
- 고교학점제 취지에 부합하는 대입 제도 개선: 수능 영향력 축소 또는 자격고사화, 성취평가 결과의 대입 반영 확대 등 학생의 다양한 학습 경로와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 학점제형 학교 공간 조성 및 교육 환경 개선: 가변형 교실, 특성화된 실험·실습실, 홈베이스 등 다양한 학습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을 확충하고 , 안정적인 ICT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 지역 간·학교 간 교육 격차 해소: 교육 소외 지역 학교 및 일반고에 대한 집중 지원, 지역 협력 네트워크 구축, 양질의 온라인 학습 플랫폼 접근성 보장 등이 필요하다.
결론 : 미래 교육을 위한 협력과 장기적 비전
고교학점제는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교육 개혁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단기적인 처방을 넘어 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수적이다. 교원 지원 강화,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 내실화, 대입 제도와의 정합성 확보, 교육 인프라 확충 등 산적한 과제 해결을 위해서는 교육 당국, 학교, 교사, 학생, 학부모 등 모든 교육 주체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절실하다.
특히 수도권 교육 현장은 높은 교육열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교학점제가 가져올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책 입안자들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발생 가능한 문제점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고교학점제가 단순한 제도 변화를 넘어, 학생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현시키고 미래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시키는 교육 혁신의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단거리 경주가 아닌, 긴 호흡으로 함께 만들어가야 할 우리 교육의 미래다.